장송의 프리렌 잔잔한 스토리가 주는 여운, 판타지 일상물 애니 추천
지금 '라프텔', '넷플릭스', '웨이브' OTT 등에서 볼 수 있는 '장송의 프리렌'. 만화책 원작은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하고 1700만 부를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전투 장면보다는 소소한 일상과 개그로 감동을 주는 만화. 개인적으로는 원작에서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애니메이션은 너무 재밌다.
원작 : 장송의 프리렌 (야마다 카네히토, 아베 츠카사)
감독 : 사이오 케이이치로
제작 : 매드하우스
장르 : 판타지
등급 : 15세 이상가
용사의 파티가 마왕을 잡으러 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왕 잡고 긴 시간이 흐른 후 불멸에 가까운 엘프 프리렌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모험하는 만화다.
장송의 프리렌 줄거리
용사 힘멜, 성직자 하이터, 드워프 전사 아이젠, 그리고 엘프 마법사 프리렌, 4명의 용사파티가 드디어 마왕을 무찌르고 그들이 함께한 10년의 긴 모험이 끝이 났다. 인간에게 10년은 짧은 수명 속 긴 시간이지만 엘프 프리렌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과 같았다. 마지막 왕도의 축제에서 유성우를 바라보며 50년 뒤에 '또 보자'라는 말과 함께 프리렌은 다시 여행길을 떠났다.
50년 후, 다시 왕도로 돌아온 프리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았을 때 그곳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바로 용사 힘멜. 누구보다 반짝이게 빛나던 용사 힘멜은 이제 늙고 힘 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 재회한 힘멜, 프리렌, 하이터, 아이젠 용사 파티는 50년 전 약속한 유성우를 보러 간다. 마지막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며 과거 10년의 모험을 떠올리던 용사 힘멜은 동료들 품에서 눈을 감는다.
왕도에서 힘멜을 위한 장례식이 열렸다. 용사를 위해 많은 이들이 예를 갖추고 있다. 프리렌은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맞이하려 했지만 힘멜과의 추억이 생각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렇게 짧은 시간일 줄 알았다면 왕도에 머물 것을, 좀 더 자주 찾아올 것을... 후회의 눈물일까? 자신은 힘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거 같아서 슬프다. 그런 프리렌을 하이터와 아이젠은 위로해 준다.
용사 힘멜이 죽고 또 시간이 흐른다. 이번에 프리렌은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하이터를 찾아 간다. 술을 좋아했던 타락한 성직자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이터는 고아 페른을 거두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페른은 마법에 대한 재능이 아주 탁월했다. 하이터는 프리렌에게 페른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것을 부탁하고 힘멜과 마찬가지로 하이터도 눈을 감게 된다.
꼬마 페른이 이제는 프리렌보다 키다 더 커질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프리렌과 페른은 이번에는 아이젠을 찾아간다. 인간보다 수명이 좀 더 길었던 드워프 하이젠은 생각보다 늙지 않았다. 아이젠은 프리렌에게 '대마법사 플람에의 수기'를 같이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 장소는 하이터가 생전에 찾아낸 장소로 세 사람은 그곳으로 향한다. 그 장소에 과거 프리렌은 온 적이 있는 곳이다. 대마법사 플람메은 다름 아닌 프리렌의 마법 스승이다. 그리고 플람메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천년보다 더 오래된 고대의 사람이다. 프리렌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혼자서 살아 온 것이다.
플람메의 수기에는 '오레올'이라는 혼이 잠드는 땅에 대한 얘기가 있다. 플람메는 그곳에서 죽은 동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아이젠은 프리렌에게 오레올을 찾아가 힘멜에게 하지 못한 말을 전하라고 한다. 그렇게 프리렌은 힘멜을 다시 만나기 위한 모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전위가 필요하다면 아이젠은 자신의 제자 슈타르크를 데리고 가라고 한다.
긴 시간을 홀로 지내던 프리렌은 제자 프렌, 전사 슈타르크와 함께 '오레올'을 찾기 위해 다시 모험을 떠난다.
힐링 판타지 세계
매회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매회 모든 스토리가 감동적이며 여운을 남긴다. 프리렌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으면 씁쓸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매번 동료들의 죽음 목격하는 프리렌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다. 혼자 남겨진 프리렌을 위해 곳곳에 동상을 남겨 놓는 힘멜, 프리렌이 수집하는 마법들의 쓰임새 등 이런 알찬 스토리들을 어떻게 잘 담았을까 감탄했다.
판타지지만 액션신의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잔잔한 스토리로 사이사이 공백이 느껴지는데 왜 꽉 찬 느낌을 주는 걸까?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내게 이 느린 템포가 주는 프레쉬함이 너무 좋다. 캐릭터의 대사도 느리고 많지도 않은데 말이지.
한 번씩 터져주는 액션신도 퀄리티가 상당하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전투신이 오히려 귀하다. 전투 장면만 너무 나오면 피곤할 수 있는데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몰아치는 액션신이라서 쪼이는 맛이 느껴진다.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는 주인공들의 일상이 재밌다. 애니가 처음 시작할 대 용사 힘멜의 죽고 몇 년 후라는 멘트를 보여 준다. 이 시간은 프리렌이 인간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늘어갈수록 힘멜과 동료에 대한 기억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 듯한 연출을 보여 준다.
묘한 개그에 대한 욕심도 있는 거 같고 타율도 좋다. 요즘 너무 화려하고 전개가 빠른 애니메이션 추세에 지쳤다면 느긋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장송의 프리렌'이다.
애니메이션 작화팀 극찬한다.
나는 보통 애니보다는 만화 원작을 좋아한다. 만화에는 빠른 전개도 좋지만 작가 손수 그리는 선에 대한 개성, 그리고 점점 좋아지는 작가의 그림 실력을 보는 것도 은근히 재밌는 부분이다. 반면 '장송의 프리렌'은 원작의 느린 템포보다 더 느리게 흘러가는데도 재밌다. 느림의 사이에 좋은 연출을 많이 보여준다. 같은 장소에서 힘멜 용사파티의 프리렌과 지금의 프리렌을 교차로 연출하는 장면은 보는 이를 은근히 뿌듯하게 만든다. 이는 프리렌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작화의 능력.
사실 원작에서의 대부분의 전투신은 두컷 이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전투신이 거의 스킵에 가까울 정도로 넘어가기 때문에 애니에서 보여주는 훌륭한 전투신 때문이라도 봐야한다. 진짜 원작에서는 아주 귀한 장면들이다.
또 한가지 캐릭터 디자인 미쳤다. 원작에서 페른은 그냥 그런 느낌인데, 애니에서는 너무 귀엽고 매력 있게 나온다. 배경도 전통 판타지 세계의 정수라고 할까. 한편만 봐도 동화 한편을 읽은 듯한 여운을 남긴다. 오프닝, 엔딩 OST 노래도 너무 좋으니까. 한 번씩은 듣고 넘어가는 게 좋다.
원작은 프라이펜에 구워 먹는 고기라면, 애니메이션은 시즈닝 해서 장시간 훈연으로 구워 먹는 스테이크 느낌. 같은 재료지만 확연히 달라지는 맛이다.
마무리
셀 수 없는 많은 시간을 프리렌은 살아왔다. 플람메를 만난 순간부터 프렌과 함게 모험하기까지 프리렌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 많은 동료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프리렌은 이제 곧 프렌은 죽음도 지켜봐야 하는 슬픈 전개가 예상된다. 개인적으로 완결에서는 이렇게 안 끝내주면 좋겠다. 늙어버린 프렌이 프리렌에게 '스승님'하는 장면... 생각만 해도 슬프잖다....
의외로 이런 긴 시간을 보내는 영생과 같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많다. '불멸의 그대에게, 웹툰에서는 '애늙은이' 같은 작품. 불멸에 가까운 주인공들에게 주위 사람들은 먼저 떠나보내는 이야기는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다. 프리렌의 다른 작품과의 다른 점은 과거의 스승 플람메, 힘멜 용사파티와 현재의 프렌, 슈타르크는 프리렌을 중심으로 끊이 없이 교감을 한다. 과거의 흔적을 쫓아가는 거 같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다시 기억하는 이야기.
캐릭터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판타지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애니를 찾는다면 '장송의 프리렌' 추천한다.